설명가능한 미술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지음>
- Posted at 2010/07/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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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라는 책은 일반인과 미술을 전공하는 자를 불문하고 모두를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사실 나같은 미술 문외한에게는 그리 쉬운 책은 아니다. 이전에 인터넷 교보문고에 쓰여진 서평들을 보고 언젠가 한번은 입문서(?)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도서실에서 이 책을 본 순간 그 압도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선뜻 집어들 수 있었던 원인은 다분히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였다.
이 책을 읽으니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2001년 봄, 당시 에어컨도 잘 가동되지 않던 약간은 어둡고 낡은 강의실에서 난 서양미술사에 대한 교양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것은 철저히 우연, 아닌 해야만 해서 선택했던 수업이었다. 당시, 신입생들에게는 소위 학점 잘 받고 재미있는 교양을 선택해야 하는 권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라는 것은 꼭 나쁘진 않은 거 같다.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그 수업이 결코 나쁜 수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학점을 받을 순 없었지만 ㅋ 아무튼..., 공대생에게는 결코 경험하기 힘든 이색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떠한 산물에 대한 평가는 그 작품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속에서 할 때 비로소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회화로 대변되는 미술의 세계는 이러한 평가 방식이 더욱 유효할 수 있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이후, 즉 인상주의를 선두주자로 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바톤을 이어받은 미술의 세계에 역사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평과결과는 해당 작품들에 탄생 원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조소와 무시일테니깐.
이는 비단 일반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 같다. 실상 작품이 태어나고 전시될 당시에 태어났던 소위 말해 미술에 식견이 있는 전문가 부류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무시되고 평가절하 당하기 십상이었던 것을 보면, 기성 미술 표현방식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저항'은 회화의 표현방식 및 표현대상 선정에 있어서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수 많은 작품들이 나오고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이어지지만 사실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건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짧은 시간내에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식견을 넓혀 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같은 문외한에 대한 한줄기 빛과도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는 목적은 자신의 가진 지식의 서툴고 모난부분에 대한 균형을 야기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전혀 없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심을 유발하는 것에도 있기 때문이다.
아미 2001년의 그 낡고 어두운 교실이 아니었으면, 내가 '서양미술사'를 선택하는 일을 결코 읽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서양미술사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그 때의 모습을 다시금 회상해보는 시간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의 광경을 '인상주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상상하는 얼빠진 녀석의 모습은 더더욱 없었을 거고 ㅋㅋㅋ
Posted by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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