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해내는 이미지의 그 뒷면에는 항상 구리고 보여주기 싫은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실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진실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싸이월드의 비밀일기와도 같은 것이며, 한겨울 코드속에 숨겨진 여자의 늘어버린 군살과도 같다.

 은행원으로 처음 날 맞이한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깔끔한 이미지, 정돈된 삶, 그리고 높은 보수... 그래 일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이것만으로 우린 은행원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셔터가 내려가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서류정리에서부터 마감업무, 그리고 전표정리 및 뚫기까지 각종 허드렛일을 하고 나서 느껴지는 자아상실현상속에서 비로소 높은 임금속에 가려진 직업의 진면목(?)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은행의 모습과 미국투자은행의 삶을 1:1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보이지만, 아주 근본적인 속성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높은 보수는 분명 직업을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장점으로 다가서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사실 빛 좋은 개살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모습에 적지않이 실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회사는 여러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뛰어난 한명의 개인보다 평범한 여러명의 충실한 종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세상을 바꾼 잡스나 빌게이치는 어떤 사람이냐고? 잘 생각해보라. 그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만든 회사를 경영하고 있을 뿐이지, 회사의 굴레내에서 성공한 모범생들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비리그에서 다시 일류 MBA로,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으로의 진출까지 누구나 보기에도 화려해보이는 그 이면에는 폭언을 일삼는 상사와 매일야근도 모자라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이 버티고 서 있다. 가치있는 기업을 투자자에게 소개하고 신주발행이나 채권인수등의 업무들은 고도의 전문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매번 조작되고 되풀이되는 피치북과 과도하게 빡빡한 일정으로 그 원래의 목적을 의심하게끔 만드는 기업실사 작업들이 있는 식이다.

 이 책은 투자은행의 무용론이나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하는 일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보수를 받는 것에 대한 자각을 지은이는 하고 있지만 그것은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논하는 개인적인 관점인 것이지, 은행의 사회적인 책임과 국가경제에서의 역할을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이야기가 자칫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어려운 곳으로까지 흐르거나, 혹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경제경영학의 이론들을 나열하여서 더이상은 소설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책 내용은 해학적이다. 화장실식 B급 농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개중에는 여성들이 읽었을 때에는 눈살을 찌푸릴만한 표현들이 즐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루함을없애주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부 유머의 경우 다분히 지역적인 색이 뭍어나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고 본다.

 이 하나의 책으로 투자은행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책의 대부분의 업무는 지은이에겐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러한 업무들이 결코 전문성을 요하지 않을 정로 단순한 업무 투성이라는 말도 아닐 것이다. 지은이는 단순히 자신의 글을 통해서 항상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의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숨어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줬으면 햇을 것이다. 선택은 분명 각자의 몫이며 삶에서 무엇을 더 우선시 할 지에 대해선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은이가 지옥과도 같은 삶을 견디지 못하고 채 3년이 못되어 투자은행에서 뛰어나와 이런 글을 쓰긴 했지만, 그의 동료중 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에서 죽도록 일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막대한 보수를 받으면서 상류층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뛰어들었다고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봉달이

2010/03/01 17:05 2010/03/01 17:05

 지금 시간이 난다면 신문이나 포탈의 경제관련 기사를 한번 봐라. 당신이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경제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들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야만 하며 발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떠든다. 그리고 그 '부자'가 되는 것이 곧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난 이유이자 죽을 때까지 지켜나가야 하는 길인양 부추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며 부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많아지는 반면에 부자의 대열에 합류해 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적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 부자가 되는 방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며, 둘째 누군가는 그 '방법'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 정보를 얻기에 용이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소위 '재테크'라고 말하는 자신의 자산을 자신의 노동으로 벌어들인 그 양 이상으로 늘리는 방법에서도 예외는 될 수 없다. 그러나 늘어난 정보량은 곧 양질의 정보를 의미하지 않으며, 어쩌면 부자가 되는 방법에 있어서 양질의 정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나온지 2006년 7월 5일 초판인쇄가 되어서 선풍적인 열풍을 몰고왔던 책이며 여전히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책이 인기가 있었다는 점 보다는 오히려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주식이라는 것에 열광하기 시작한 그 시기에서부터 시작되어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모두다 '예'라고 할 때 '아니다'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의 집약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이 더 익숙한, 그리고 본인의 직업보다 투자전문가(정작 저자는 자신이 전문가로 불리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편인 거 같다)로 더 잘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다른 주식전문가들, 혹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얘기하는 그런 '재테크'의 달인이기보다 세상의 흐름에 대한 다분히 분석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던져주는 것에 대한 세인들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더욱이 단순히 자산의 가치를 늘려주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전달해주기보단, 왜 우리가 그렇게 돈을 모아야 하는지, 과연 '부자'란 어떠한 상태를 얘기하는 것인지와 같은, 경제나 재테크를 넘어선 다분히 철학적으로까지 보이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세심한 대답에 감명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부자가 되기 어려운 점은 쉽게 말해서 동일한 수익을 내기 위한 리스크가 가진 자에 비해 비해 상대적으로 빈한 자가 더 많이 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만약 당신이 1000억을 가진 자본가라면 당신이 예의주시하는 것은 금리일 것이고, 혹은 예의주시하지 않더라도 단 몇 %의 이자만으로도 아주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기본적 재테크 방향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주어진 것을 잃지 않는데 그 촛점을 맞춘다.

 그러나 없는 자에게 있어서 수익률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여 준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저축할 경우 단순히 은행금리에 의존해서는 그 미래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제외한 나머진 금액이 최소한 0원 이상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서민으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나, 매달 저축하는 금액의 절대규모의 증가없이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노후대처에 대한 지나친 안일함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 극도의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은행 금리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위험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주식, 부동산,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감수하게 되는데 이 점은 수익률이라는 동전의 한면만 바라본채, 그 이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손실의 가능성 및 기회비용상실에 대한 부분을 감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해동안 7~8%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보자. 이것이 결코 적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매해 7~8%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당신은 성공한 투자가다. 실제 은행에서 상품을 팔아본 사람의 입장으로서 말을 하자면 06~07년 후반과 같은 급격한 상승기가 아니면 그 흔히 말하는 적립식 펀드로도 한해 7~8%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정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반대로 그만큼의 손실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20년이라는 투자기간 동안 당신이 만약 몇 번의 크고 작은 손해를 경험한다면 몇 차례의 큰 수익을 올렸던 것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수익률은 시장평균을 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거래횟수가 빈번할 수록 결과적으로 시장평균을 하회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언론이나 정부, 그리고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들까지도 좀처럼 손실의 가능성을 부각하는데 주저하기 때문이다. 각종 금융상품의 거래가 활발할 수록 이를 통해서 발생하는 각종 부대비용들은 정부의 곳간을 채우고 금융회사의 막대한 수입원이 된다. 게다가 언론은 이것을 더욱 부추기고 어느 누구도 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는데 주저한다. 이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상에 대한 분석을 쏟아내는데 몰두할 뿐이지, 그 이면에 있는 미세한 변화나 흐름까지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직접 축구를 하는 것과 축구경기를 중계하는 것과 같으며, 종종 전문가들의 투자실패와 그로 인한 인간쓰레기로 전락해버린 무용담을 통해서도 투자의 객관적인 조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보다 답은 간단한 것에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끝없이 문제에 대한 것을 되뇌이고 자신을 바로세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며 가진 돈을 불리기는 커녕, 세상의 온갖 감언이설에 힘들게 모아놓은 노동의 가치 이하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 쉽다고 말할 때, 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쉬우면 지가 하지, 왜 나불대는거야?' 정도의 의심은 필수라고 하겠다. 이것은 매사에 의심으로 가득찬 도끼눈으로 살아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자신을 자산을 지켜나가는데 있어서는 속세의 검증되지 못한 투자개똥철할의 그 이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철저히 검증하고 되묻고 의심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투자'라는 것이 미래의 생존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진정한 부자의 태도란 지키는 것이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가슴속을 파고 드는 순간이다. 책을 통해서 돈을 대하는 나의 머리가 더욱더 차가워지기를 희망한다.

 ps. 다음 중 지난 20년간 가장 수익을 많이 낸 것은 무엇일까요?
      1. 부동산         2. 주식          3. 예금            4. 채권

 Hint) 시중 유동성의 흐름은 결국 '금리'의 변화에 기인합니다.

Posted by 봉달이

2010/02/14 14:35 2010/02/14 14:35

 지금 현재 10~20대가 겪는 문제의 발단은 무엇 때문일까? 10대에서야 가장 큰 화두는 '교육'이고 이 문제야 워낙 오래전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던 거라 다소 특별할 것은 없어보이지만, 청년실업으로 대두되는 20대의 취업난은 이미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 국가의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리진 오래다.

 그런데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이미 사회의 많은 것을 소유하고 향유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태도다. 이는 당장 나라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부터 그러한데, 그는 현재 취업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의 한 원인을 안정을 원하고, 도전정신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

 물론 이는 한 개인의 경험에 의해서 관찰한 정확한 현상판단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그러한 개인의 성향때문에, 즉 어려움을 두려하고 극복하지 않으려는, 또한 자신의 꿈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대학시절 경험했던 현 세대는, 이전의 세대보다 훨씬 타이트하고 팍팍한, 즉 취업만을 위한 대학생활을 더 했으면 했지, 결코 그냥 멍하니 시간만 죽이는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역시 개인 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3~4학년이 되면 이제는 어엿한 준(?)사회인으로서 현실을 직시하고 낙타같은 몸으로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어느 덧 대학생의 스탠다드화 되어 버린지 오래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한 개인이 아니다. 사회체제 자체에 크나큰 모순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는 늘 희망을 얘기하고, 노력하는 자의 성공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과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하고 또 노력해봤자 그들에게는 10%가 아닌 90%,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불안정이 기다리고 있다.

 현 세대는 분명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곧 그들의 앞날도 풍요로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때는 너희들처럼 풍요롭지 못했어.', '야...학비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 '난...책과 공책도 없었다고' 라는 말을 하는 기성세대는 많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젊은 시절에 있었던 지독한 청년실업에 대해서, 그리고 돈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말을 안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실상이 그랬다는 것은 슬픈 진실이다. 세상을 바꾸는 엘리트,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는 열사로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386세대, 그래서 종종 부와 풍요로움과 거리가 있을 거 같았던 그들도, 실제로는 현재의 20대에 비해서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성적표에다가 그 많은 CD를 깔고 쌍권총을 그려놔도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기업, 중견기업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비록 명목상의 소득은 그들보다 높아졌을 지언정 안정된 직업을 구하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현재의 20대보다 무엇이 더 못했단 말인가?

 현재의 승자독식의 시대가 빠른 경제성장의 결과로서 얻을 수 밖에 없는 부작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모순점을 수수히 방관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부추기기까지 하는 정권은 이전에는 없었다. 책이 쓰여졌을 당시가 노무현정권이 잡고 있던 때여서 주로 지난 정부의 경제운용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면이 많이 있었지만, 이는 현정권이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재의 대운하나 기타 정부가 추친하고 있는 여러가지 정책은 분명 일부 대기업을 위한 정책이며, 이런 식의 정책으로 수치상의 경기를 부양시킬 수는 있지만 극적인 고용증가를 이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성세대가 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같다. 기성세대는 하이틴드라마에서 말하듯이 '우리들'을 이해못하는 세대가 아니라, 철저히 이해하는 세대이며 그들은 그러한 점을 잘 이용해서 10대와 20대를 마케팅 대상으로서 삼는 것은 물론 불평은 있지만 철저히 그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정치참여와 공적 의견개진에는 20대들의 특성을 이용해서 그들의 시궁창과 같은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비단 세계화와 이를 토대로 한 무한경쟁시대에서 이전과 같은 사회의 모습으로 회귀를 주장할 수는 업겠지만 현재의 이 모습을 그대로 방관하기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향후 10~20년이 흘러서 현재 경제의 주축세력들이 은퇴를 하고 지금의 10~20대가 다시 그 자리로 가야하는 시기에, 그들이 땀 흘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자리가 충분히 남아있을 것일까? 그들이 벌지 않고, 사회적인 약자로 남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불안요인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충분히 생각하고 있을까?

 기성세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아니다. 실지로 중요한 것은 기존에 세대에게 편중되어 있는 각종 특권들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일정부분 양보하는 것이며, 큰 기업 위주로 편재되어서 불균형이 심화되어 있는 현 체제를 좀 더 다원화시키고 각각 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하고도 동시에 본인의 노동대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쓰다보니 독서감상문이 아닌 목적이 모호한 글이 되어버렸지만, 현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누구나 할 말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세상이 변하여, 아 이 때는 이랬지 하며 소주한잔 기분 좋게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Posted by 봉달이

2010/02/01 00:43 2010/02/01 00:43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세상의 기록물들은 줄곧 승자들에 대해 기록한다. 심지어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을 묘사하는 것도 대부분 승자들의 시각으로 본 패자들의 모습이다. 승자는 철저히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세상을 이끌어나가고 종종 이는 행복과 성공으로 묘사된다. 패자들의 모습에 주목하는 자들은 많지 않으며, 무한경쟁의 현대사회에서는 이들을 언급한다는 것은 자칫 할일없는 자, 지나치게 감상적인 자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전적으로 현재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패자',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루저'들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단 3년동안만 존재했던 '삼미슈퍼스타즈' 그리고 그들을 동경하고, 때로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삶에 지쳐서 잊었었지만 결국에는 다시 그들의 순수한 그 아마추어 정신을 사랑해 마지 않았던 소년들, 그리고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패자들의 삶은 어둡다. 이야기 하자면 밤새 술의 안주를 삶아도 안주가 떨어질 걱정은 붙들어매도 될 것이며, 일일 열거하자면 입 아픈 그것들. 항상 그 속에 있으면 그 어두운 기운에 나의 기운도 빠지기 마련이며, 아 이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그토록 요원하는 구나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설이 어두운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생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점은 작가의 재기넘치는 상상력과 너무 가볍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발랄한 표현 때문이다. 이미 근래에 발매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박민규 작가는 정말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 것 같다. 다분히 본인의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지난 70~80년대의 동경이 이 소설에서 강한 향기를 품고 있으며, 그것은 어렸지만 그래도 때로는 명확히 기억되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나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작가는 야구와 그 팬들에 대한 소설을 썼지만, 이것은 어쩌면 야구보다는 우리 삶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야구경기에서의 '패자'를 기억해주지 않듯이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면 당시 우승했던 다른 팀보다, 평범한 우리들의 삶은 '삼미슈퍼스타즈'의 플레이와 닮아있는 것 아닌가? 성공이라는 키워드로 프린트된 옷을 입을 수 있는 자들이 우리중에 과연 몇이나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옷을 입었을 때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은 좀 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은 '더 빨리' 성취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스포츠의 본래 목적이 다른 누구를 이기는 것이 아닌, 같이 땀을 흘리고 즐기는 것에 있다라고 한다면, 진정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 가운데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그 본래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삶의 가치라고 소설을 말하고 있고, 나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까짓 것 좀 못 던지고 못 잡으면 어때?
 그랬거나 저랬거나 언제나 우리의 삶은 플.레.이.볼~

Posted by 봉달이

2010/01/23 19:42 2010/01/23 19:42

넛지 -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두꺼운 책은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그 내용이 지나치게 많거나, 뭔가 대단한 것을 담고 있거나. 본 책은 과연 이 두가지 중 어디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소 냉철하게 말하자면 나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렇다고 본 책이 재미가 없거나 내용이 말도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저자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주류 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다른 각도의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책의 담고 있는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 지극히 직관적이고 단순한 문제부터(사실 이것은 넛지, 또는 선택설계라는 것이 필요없다), 저축을 증대하는 방법, 올바른 주택담보 대출 상품을 선택하는 다소 어려운 부분까지 두루두루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대부분의 것들, 정확히 말하자면 자주 겪을 수는 없고,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대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선택설계'를 통한 '개입주의적 자유주의'을 도입하자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여러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지만, 솔직히 결혼제도에 대한 얘기는 빼는 게 좋을 뻔했다. 짤막한 나열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미니넛지'들에 대한 언급은 그저 수박 겉핥기와 같았고, 넛지들에 대한 각종 반론들은 조금 더 간결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미국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부분은 한국의 독자로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근로자나 그들의 부양가족이 공적부조의 효과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은 먼나라의 얘기처럼 느껴진다.(슬프게도 현재 민영의료보험의 시대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결론은 내용의 참신함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으나,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는 것. 저자로서 글쓰기의 방향을 고려하기에 한국의 독자들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ㅋ

Posted by 봉달이

2010/01/18 23:08 2010/01/18 23:08

 위대한 회사란 과연 무엇일까? 여러가지 항목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분명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이윤창출을 하는 회사일 것이다. 이윤의 창출이야 말로 회사의 존재 목적이며, 기업의 큰 가치중 하나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기업의 성장은 과연 어디서 올까? 경제학의 기본 원리처럼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적인 경영자의 뛰어난 리더쉽과 판단력으로 가능할 것인가?

 매스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성공한 CEO와 그가 경영하는 기업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그들의 선전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훌륭한 CEO의 역할과 그들이 이뤄낸 성과를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기업을 넘어서서 그것이 비교가 되는 다른 기업들보다 월등히 좋은 성과를 그리고 영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

 본 책이 매우 뛰어난 점은 다소 논란이 있을만한 위대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비교를 그저 그만의 상념에서 나온 설익은 학문이 아닌, 철저한 기준정립과 데이타를 통한 검증을 거쳐 책으로 기록되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사뭇 진지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완고해보이기도 한다. 포츈지 선정 500대 기업(때로는 모집단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저자는 언급한다)중에 '좋은'을 넘어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기업은 고작 11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속하지 않는 다른 좋은 기업들도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철저한 기준앞에서는 그것은 단순히 그저 '좋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좋은'을 넘어선 위대한 기업에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지나치게 겸손하지만 회사와 일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끈기있는 도전을 해왔던 경영자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가야할 지에 대한 방향 잡기보다 핵심적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먼저 영입하고자 했던 사람위주의 경영이 그 밑바탕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다른 많은 점들, 그리고 그 검증과정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우리는 어느새 너무도 시끄럽고 화려한 선전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대함'의 가치는 그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것은 때론 너무 조용해서 눈에 띄지도 않는 것이었으며, 10년 동안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던 기업의 불확실한 미래였다.

 위대함은 결코 번쩍임이 아니다. 위대함은 지속가능한 것이며, 위대함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세상사람들을 그들의 우직함과 재빨리 드러나지 않는 미래를 조롱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라도 말이다.

Posted by 봉달이

2010/01/12 00:57 2010/01/12 00:57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설명가능한 것이고,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녹아들어와 있기 때문에 당연스럽게 생각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다음의 몇 개의 질문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더라도 당신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 혹은 이러한 질문들이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의문을 던져주지 않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 인간과 동물의 궁극적 차이는 무엇일까?
 2. 비만은 전염되는 것일까?
 3. 당신은 어제의 당신과 100% 같은 사람일까?
 4. 인간(동물)은 왜 영원할 수 없을까? 노화가 원인이라면 노화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각각의 답이 '자아(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음)', '아니오', '당근이지,' 'ㅎㅎㅎ 병신' 이면은 당신은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다만 책을 정확히 반을 나눠서 앞 부분만 읽고 나머지 부분은 딱지를 접든, 명절날 전 부칠 때 쓰는 깔개로 활용하든, 난로의 불쏘시개로  쓰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총 10가지의 질문이 있었지만, 4~5가지의 질문만을 제시한 것은 나머지는 너무도 심오하고, 때론 너무도 어려워서 쉽게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서야 고백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 책을 2번 읽었다. 그것도 연속으로.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이해의 폭은 결코 넓어지지도, 깊이는 깊어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책을 쓰더라도 이 책의 분량 300쪽으로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심오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과학자들도 아직은 확실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아니면 그것이 진정 왜 발생하는지를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체 중, 지은이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것의 나열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어떡하란 말인가? 나도 모르겠다. 이 책엔 답이란 없다. 오로지 질문 뿐이고, 궁금한 것의 나열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책이 일반인이 과학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이 조금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이딴 질문 말고도 생각할 게 너무 많은 것으로 애둘러버리는 것은, 결국 나의 지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까? ㅋ

 

Posted by 봉달이

2010/01/03 21:18 2010/01/03 21:18

1Q84(2) -무라카미 하루키-

 진짜 헷갈려 죽겠다. 뭐가 이렇게 불확실하고 두루뭉술한지. 어쩐지 1권에서는 너무 친절하다 싶었어. 누구 말대로 속편이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2권의 마지막을 결말이 지어진 이야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리시버는 죽고, 아오마메도 죽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밀종교단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작가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1권에서 선구를 변태적 성적 욕구를 가진 종교지도자의 단체로 묘사했다면, 2권의 후반부에서 교주에 대한 묘사는 그도 어쩔 수 없음으로 종결된다. 그럼 나머지는 무엇인가? 선구의 설립자는..., 후카에리의 부모의 실체는, 사라진 어린 소녀의 행방은... 모든 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중반을 지나서 이야기는 다소 균형감을 잃어간다. 덴고와 아오마메를 번갈아가며 그려내던, 그러면서도 그 주변에 대해 시의적절이 언급해주던 페이스는 후반을 갈수록 아오마메의 내면과 덴고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노부인의에 대한 언급도 다마루에 대한 더 이상은 언급은 사라진다. 스토리 전개상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축이 무너지지 이야기의 생동감은 줄어들어 버렸다. 그나마 아오마메가 죽으면서 덴고에게 남겨진 마지막 부분은 깔끔한 종결을 짓기에 버거워져 버렸다.

 두 개의 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가 달을 가지고 1984년과 1Q84년을 구분 지었다면 달에는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덴고도 두 개의 달을 보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일까?

 그래도 굳이 이 책의 주제를 찾아내자면 아마 '사랑'이 아닐까? 이뤄질 수 없더라도 누구나 가슴속에 품을 수 있는 리얼러브. 가끔 터져 나오는 주인공의 변태적 성욕도, 연상의 여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덴고의 행동도 결국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짜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였는지도.

 일본 만화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신세기에반게리온'을 떠올린 것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은 아니었으리라. 책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짙은 안개가 끼어버린 도쿄의 밤거리를.

Posted by 봉달이

2009/12/27 23:40 2009/12/27 23:40

청춘의 독서 -유시민-

 이 책은 아주 뛰어난 독후감 모음집이다. 그러나 단순히 책에 대한 얘기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어쩌면 한 사람의 삶을 그가 읽은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독서라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효용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한 개인의 생각 틀을 완성하고 그를 통해 그의 인생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독서의 가치일 것이다.

 한 명의 아들에서, 한 명의 엘리트로, 다시 한 명의 투사에서, 한 명의 전과자로, 마지막 국회의원에서 장관까지. 잘 짜인 하나의 성공스토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코 성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그는 주류세력으로부터 외면받고 핍박받은 철저한 마이너였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서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을까? 작가가 꿈꾸어왔던 사회의 모습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고, 극적인 삶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 선 그를 맞이하는 것은 철저한 고독이었다. 그리고 상당 부분 그것은 그가 읽었던 책의 주인공이나 그 책을 쓴 저자의 삶과도 닮아있다는 점은 지나친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책의 내용을 통해서 보더라도 그는 보통 글쟁이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의 지적인 능력이나 뛰어난 논리는 방송을 통해서도 접한 뒤라 당연하리라 생각될 만도 했지만, 그냥 읽기에도 쉽지 않았을 그러한 책들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내고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내는 것은 글쟁이로서 그가 가지는 뛰어난 자질이다.

 쉽게 읽기에 다소 뻑뻑한 면도 없지 않지만, 논리적인 글이 지닌 가치는 아직도 비논리가 판을 치는 것이 이 시대상황이기 때문이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스스로 '보수'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무논리와 몰상식, 그리고 지난 역사 앞에 뻔뻔할 수 있는 그들의 무감각 때문일 것이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보았고, 또 그를 통해서 변해야 할 미리에 대해서 꿈꾸었던 한 청년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의 서슬 퍼런 정신이야 무뎌졌을망정, 그래도 그가 지녔던 생각이 결코 허황된 생각이 아니었다는 점은, 그가 읽었던 고전들이 후대에도 여전히 인정받는 고전으로 남는 이상 변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자라나는 20세대에게는 '아..., 대학생활이 취업이 다가 아니구나'를
 사회의 주축이 된 30~40대에겐 젊은 날의 향수와 어쩔 수 없음을 만들어버린 현실의 무게를
 나이 든 50~60대 이상의 어른들에게 '이 새끼 아직도 할 말이 있나 보네.'라는 생각을
 남겨줄 만한 책이다.

Posted by 봉달이

2009/12/26 20:46 2009/12/26 20:46

이것 역시 하루키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아..., 그전에 하루키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명의 소문난 글쟁이의 단어를 통한 세상비틀기는 한 없이 유쾌하지만은 않은 거 같다.

하루키는 꽤나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좀 더 관대한 기준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쓰레기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재미를 갖추었고, 일부 소재에 대해서는 수긍할만한 내용이었으니깐.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루키와 또 한명의 괴짜(이 녀석은 어쩌면 하루키보다 더한 녀석인 듯)의 머리속을 들여다봐야만 할 것이다. 작가가 만약 친구라면 직접 술이라도 한잔 사주면서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테지만. 때때로 어떤 소재에 대한 글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그 비유는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서 난해한 느낌이 표현의 독특함을 갉아먹어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단지 작가의 명성만으로 선택을 했다면, 그건 유명브랜드의 옷이라고 해서 디자인을 보지 않고 해외구매대행 사이트로 광클질을 한 것과 도대체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작가가 항상 읽기에 친절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테지만, 이 책을 읽고난 다음에 느껴지는 건 큰 허무함 뿐이었다.

Posted by 봉달이

2009/12/12 12:17 2009/12/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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