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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 도서열람실의 진열선반에서 해변의 카프카를 처음 봤을 땐 무의식적으로 군시절 한 선임이 생각났다. 거의 병장이 다 되어 중대로 전입왔던 기이한 경력의 선임. 아직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참 착한 선임이었고 책 읽는 것은 매우 좋아했던 거 같다.

 그에 대한 다른 모든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이 '해변의 카프카'의 겉 표지는 너무 생생했기에 나는 그 앞에서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겉표지..., 그러나 결코 세련된 맛은 떨어지는... , 근래에 발표된 1Q84와 비교했을 때에는 그러한 아쉬움이 더 커졌지만, 사실 뭐 책이란 것이 겉표지를 읽는 것이 아닌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라는 생각에 흔쾌히 대여신청을 하였다.

 해변의 카프카 역시 1Q84처럼 두 개의 공존하는 이야기가 교대로 흘러간다. 한명은 15세의 소년, 또 한명은 나이 지긋한 노인. 그러나 그들은 역시 그들의 창조주가 하루키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상적인 인간들이 못된다.

 왜 하루키는 이 토록 비정상에 집착(?)할까? 글쎄..., 그것은 문학을 써내는 혹은 소설을 써나가는 그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중에는 하루키 소설에서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성적 상상력, 폭력성, 기이함 등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아직 많은 작품을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글쓰기는 친절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교묘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름답고 올바른 언어로 그려낸다면 그건 오히려 현실이 아닌 꿈이 될 것이다. 사실상 픽션으로서의 가치가 없게 되는 것, 마치 도덕책과 같이 틀에 박힌 상상력으로 이끌어내는 이야기에 독자로서 금전적인 지출을 하게만드는 가치가 있을 것인가?

 다소 비정상적이지만, 하루키는 정말 재능있는 소설가인 거 같다. 또한 그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묘사에 있어서는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하루키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생겨나는 궁금증과  매력을 발견해나가는 것은 그의 소설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중대한 이유인 거 같다.

Posted by 봉달이

2010/07/03 22:34 2010/07/03 22:34

 군시절에 한창 베스트셀러였으니깐 꽤 오래된 책이다.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고, 우선 얇아서 '서양미술사'와 함께 빌려왔다.(서양미술사를 이동하면서 보기엔;;;)

 내용은...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크달까? 대부분 내가..,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 애초에 메모 따위에 특별한 기술이 존재할 수 없는 법. 게다가 책 자체가 메모에 대한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좀 뒤죽박죽 되어버린 느낌이다.

 솔직히 이 정도의 책이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 글 제대로 싸질르는 방법' 으로 쓰면 사람들이 좀 사서 볼려나?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은 '당신도 하루만에 책 한권 볼 수 있다.'를 일깨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얇고
 간편하다.

 근데 책은 휴대폰이 아니잖은가?
 
 베스트셀러에 속지 말자.
 어줍잖은 포퓰리즘에 기대면 등신되기 쉬운 세상 ㅋㅋ

Posted by 봉달이

2010/06/24 09:16 2010/06/24 09:16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국가원수로서의 삶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흔히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제왕적인 힘을 가진 국가원수로서 생각하고, 엄청난 특권과 권력을 휘두르는 우두머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대중들에게 잦은 빈도수로 노출되는 공인인 것을 감안한다면 한 개인으로서의 자유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서 평가하자면 많은 평가가 나오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봤을 경우에는 난 참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가 원래 추구하던 것은 큰 권력도, 다른 국민들과 차별되는 특권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불의에 저항했던 사람이고, 소외받던 사람들을 위한 보호자였으며, 이 나라가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던 정치 지도자였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그의 지나치게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점이다. 그동안 티비, 신문 등의 보도매체를 통해서 보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그는 대통령이기 전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한 여성의 남편이었다. 흔히 그려지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로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가 원한 건 화목한 가정과 자식의 행복을 바라보는 보통의 가장의 모습이었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노후를 좀 더 여유있게 보내고 싶은 적당한 부를 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시절을 거쳐 검사, 그리고 다시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를 맞이한 건 도저히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뛰어난 인권운동가로 여기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를 변화하게 하고 결국 인권변호사로서 격량의 풍파속의 뛰어들게 한 것은 단순한 '인간적 상식'이었고, 내면의 양심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를 금치 못했던 것은 올바른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언론'의 몰상식함이었다. 언론은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데에 더하여, 그릇된 점에 대하여 비판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언론, 아니 까놓고 말해서 현재의 언론이 그러한가? 언론의 정경유착, 그리고 기업과의 깊이있는 커넥션은 사실 호도하고,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흐린다. 더욱이 무서운 점은 언론 스스로가 권력화 되고 이것은 절대적으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지도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서 그러한 권한을 빼앗을 수 없다. 정치세력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을 통해서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는 다르게, 언론은 일제시대때는 일본의, 군사정권시절엔 군부세력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사회는 거대 기업의 비위를 맞추면서 스스로의 지위를 영속해나가고 있다.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노무현의 잘못된 이미지에는 이러한 언론이 그릇된 행태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실수하고, 집권여당 스스로가 국민의 현실을 무시한채 자멸한 것에도 지난 정권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근거는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하도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과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는 무조건인 비판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퇴임후 행해졌던 대통령 측근들에게 행해졌던 무차별적인 검찰수사와 탄압, 그리고 그것이 결국 본인에게까지 미쳐 검찰소환의 전 과정이 마치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듯이 언론에 보도되며 전국적인 놀림감이 되던 그 순간까지..., 과연 노무현이 진정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면서 그에게 손가락질 섞인 조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책의 마지막(본문의 마지막)을 넘기면서, 역시 고인이 되어버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를 통곡으로서 마주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차별적인 정치적 보복 속에,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곤곤히 하려는 기득권들의 인면수심의 행태들을 볼 때 가슴 한편의 분노 때문에 책의 나머지 부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80년대 뜨거운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제법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는 나라에 살아고 있다. 그러나 다시 상식보다는 몰상식이 판치는 사회, 소통 보다는 아집으로 일관하는 정치지도자, 여전히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매장하려는 거대 언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움켜쥔채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도외시하려는 거대한 자본을 볼 때 진정한 민주주의 아직 요원함을 느낀다. 그리고 평생 '보통의 가치'를 위해 살아왔던 보통사람 '노무현'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Posted by 봉달이

2010/06/04 23:13 2010/06/04 23:13

 몇 주전 수원에서 있었던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저녁에 있는 약속시간 사이가 떠서 강남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강남이나 광화문에서는 시간이 뜨면 서점에 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건 새로나온 책을 읽어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지만, 바쁜 서울시내에서 마땅히 쉴 곳이 없을 뿐더러 고작 나 혼자만의 시간 때우기를 위해 몇 천원짜리 커피를 산다는 것도 내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교보문고 매장이 고객들에게 책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매장이 아닌 건 아쉽긴 하다.

 각설하고, '불편한 경제학은'은 그 때 발견한 책이다. 평소에도 경제/경영쪽의 책에는 많은 관심이 있다. 나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유독 이 분야의 책들에 손이 많이 가게된 거 같다. 직업상 의식적으로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 분야의 책을 읽으면 뭐랄까... 그동안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 뿐더러, 현재 사회생활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곤 하였다.(만약 내가 고등학교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경제학과를 지원했을 지도 모른다.)

 '불편한 경제학'의 대상 독자층은 아주 넓다고 할 수 있다. 경제에 대한 기초적인 식견만 있다면 어느 누구나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경제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다소 모호했던 개념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도 그러했던 것이, 본원 통화량의 증가가 민간은행들을 거치면서 어떻게 신용창출을 해낼 수 있었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밀턴프리드먼의 책을 읽으면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면으로는 암호문을 해석하는 것과 같았지만 여기서는 통화현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책의 제목과는 다르게 '참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신용창출을 어떻게 일으켜내고 그 시스템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서 경제에는 생기는 순환에 주목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현상들을 풀어낸다.(신용시스템을 지켜내는 사나운 메기의 존재는 책을 통해서 확인하기 바란다.)

 책의 저자는 전문 경제학자는 아니다. 다음과 아고라 경제관련 글을 올리는 유명한 논객인데, 글을 쓰는 솜씨나 경제에 대한 식견이 대단해 보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점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지식의 접근 비용이 극단적으로 적어졌고, 원하는 지식을 찾아보는 도구가 아주 강력할 뿐더러 접근 경로도 다양하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웹진화론'에 대해 말할 때 언급한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불편한'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지만, 이 책에는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직시해야 하는 진실들의 집합체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진실의 부분은 저자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그 데이터를 말하는 것이지 저자의 주장까지 100%로 당신의 생각과 동화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신문이나 뉴스의 경제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현제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구도를 잡아내는 기사나 방송도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성급한 결론을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거기에는 일련의 함정들이 있고, 그것들을 우리는 편견이라 부른다. 편견은 사람이 사람에게만 가지는 감정이 아니다. 사람이 경제현상을 대할 때도 편견은 어김없이 작용하며, 그것은 결국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과연 그러할까요?'라는 의문을 가지라고. 기본적으로 없는 일을 꾸며내기는 힘들지만, 현상에 대한 분석은 제각각일 수 있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발발된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본다면 그렇다. 주가지수는 위기 발발 이전의 70% 이상 수준까지 올라가 있고, 외환보유량도 그 어느때보다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실물경기나 통화량의 수축, 그리고 내재되어 있는 환율의 불안정성, 국내 가계빚의 증가와 대비되는 실질 소득의 감소 및 고용의 불안정성을 본다면, 국가경제의 70~80%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에게 두 번 다시의 위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또 한번의 공황은 올 것인가? 언제라는 것을 뺀다면 나는 공황이 확실히 올 수 있다는 점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단순힌 전세계 소비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통화량 감소만 보더라도 이러한 우려가 근거없는 불안감 조성이라는 비판에 확실한 쉴드를 주는 것이다. 인간의 사용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재화에 한정이 있다면, 이를 표현하는 화폐의 증가만을 가지고는 근본적이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급격한 통화의 팽창 뒤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가지이다. 공황 또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전자는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며, 후자는 비이성적인 상태를 더욱 비이성적인 상태로 만들 뿐이다. 물론 당장에는 반대로 느껴지겠지만.

 절망적인 점은 대한민국에도 이미 디플레이션의 징조는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총생상량을 넘어서는 통화의 증가분은 보통 자산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40~50년을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주식시장의 급격한 상승으로 경험한 바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어느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본인은 절대 투자한 돈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안타깝게도 결론은 그러하지 못하다. 자산 시장의 원칙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폭탄돌리기' 랑 같다. 내가 올려놓은 가격을 받아낼 사람이 있어야 그 가격은 상승 내지 보합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냉철하게 말해보자.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그러한가? 아니면 주식시장이 그러한가? 만약 그러하다고 생각하면 전세계적으로 현제의 자산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통화의 지속적인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보는가? 중앙은해의 본원통화량의 공급만가지고는 신용창출의 한계가 있음을 안다면, 결국 전세계의 신용의 양 또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안다면 그런말을 하기 쉽지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고등학교, 그것이 어렵다면 대학교에서라도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경제학 강의는 필수로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 및 대학교육의 양질화는 진짜 필요하고 중요한 것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단어를 하나 더 외우고 시험점수를 더 잘 받는 것보다 그래서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서 죄없는 사람앞에서 큰소리치고 위세 부리는 것 보다, 문제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닶을 찾아내며, 나아가 사회에 팽배해 있는 모순 및 거짓을 바로잡아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참된 목적이 아닐까?

 진실을 아는 자 앞에서 거짓은 힘을 못 쓴다. 거짓은 오로지 무지한 자에게 효용이 있을 뿐이다. 용산 전자상가 오프라인 매장의 몰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수에 의해서 바로잡혀진 가격정보와 유통질서는 결국 타락한 상인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의미이다.

 저자의 풍부한 지식 및 경험, 다양한 예시를 통한 친절한 설명, 그리고 이를 실생활로 접목시켜낸 설명까지 어느하나 빠트릴 부분이 없는 책이다. 지면상 절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아울러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Posted by 봉달이

2010/05/30 22:20 2010/05/30 22:20

 이 책을 읽으니 자꾸 시선이 2007년 겨울로 향해 간다. 때는 입사지원 막바지 시점. 운 좋게 여러군데 회사의 선택을 받았었는데,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네이버로 잘 알려진 NHN이란 회사도 있었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이 책은 NHN의 공채에 선발된 사람들에게 주는 회사의 첫번째 선물이었다. 다른 회사들이 대부분 아무것도 안하거나 와인, 꽃다발 등을 보내는 것에 비하면 그 시도가 매우 참신했다고나 할까? 소포속에 책과 함께 동봉되어 있던 독후감을 쓰라는 것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ㅎ

 당초에 'ALAR' 카데고리를 기획하면서 마음속에 다짐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1. 일주일에 책 한권을 반드시 읽는다.
 2. 고로 한달에는 평균 4권의 책이 필요하다.
 3. 매달 첫 주 혹은 매달 마지막 주에 읽을 책을 주문한다.
 4. 읽은 책은 반드시 블로그에 후기를 남긴다.

 그런데 회사일에 한창 정신 없을 때에는 책을 읽는 거보다 문제가 되는 것이 책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종종 프로그램 수정이나 기타 부서나 영업점 직원들의 응대를 하다보면 여유있게 인터넷 서점에서 책의 서평이나 판매동향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읽게 된 것이 그 동안 내가 사놨던 책이다. 개중에는 위와 같이 특별하게 받은 것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물로 들어왔던 책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책은 나의 구매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 책들을 '읽었다'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 내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읽기'였나는 점이다.  손때가 다 뭍어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데, 적장 내용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줄기는 사라지고 기둥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그 시작은 단순히 연속적 독서의 공백을 막자하는 1차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어쨌든 이런 독서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에 대한 셀프 A/S를 실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자꾸 얘기의 흐름이 흐려지는 거 같은데, 이 책은 과거의 내 손을 거친 책인 건 맞지만 읽어본 책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책을 사서 읽는 것이랑 다를바는 없다. 다만 책의 내용이 새로운 기술 내지 사회현상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것이고 출판된지가 좀 지난 서적이라 적시성은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웹'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웹'이라는 게 정형화된 컴퓨터라는 장치를 통해서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얽히고 섥힌 복잡한 공간이라는 이미지였지만, 이제는 그런 정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듯 하다. 네트워크의 접속은 점점 일정한 공간과 장치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닌, 휴대용 기기를 이용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으며, 기존의 생산품들도 네트워크의 기능을 도입해서 사용자에게 편의를 주는 제품들을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삶의 많은 영역들은 보이지 않는 선들에 의해서 복잡한 관계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새삼스럽게 왜 이 가상의 공간에 대해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존재하고 있고,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은 공간을 말이다. 그 질문의 대한 답의 핵심은 진화의 양상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웹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로 인식할 수 있다.
 
 책에서도 주로 소재로 삼고 있는 기업 중 구글고 아마존 닷 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현재진행중이며 앞으로 진행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웹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와 이로 인한 비즈니스의 변화를 말한다. 기존의 큰 규모의 회사를 통한 폐쇄적인 개발 방식에서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한 개발, 그리고 웹상에 널려있는 수 많은 데이터들을 의미있는 단위로 분류하고 이를 최종 소비자에게 적절한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은 실로 비즈니스적인 혁명을 야기시킨다.

 난 사실 책을 읽기전까지만 해도 아마존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오프라인 존재하는 거대한 서점을 웹상으로 수려하게, 그리고 이용이 편이하게 표현해놓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단순히 오프라인의 복제품이었다는 것은 나의 판단 미스였다. 흔히 말해 아마존에서는 롱테일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마존 전체 매출의 1/3이상이 '잊혀진 책 또는 버려진 책'들로 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아마존이 아니었으면 이러한 책들은 그저 어느 물류창고의 처분이 불투명한 재고자산으로 회계장부의 한 점을 차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블로그도 이러한 웹의 진화의 단계중 태어나게 된 하나의 현상이다. 기술적으로 기존의 홈페이상의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과 달리 블로그는 간간의 글들의 독립적인 주소를 가지게 된다.(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사족이지만 덧붙이자면 블로그가 기술적으로새로운 것을 제시한 건 아니다. 다 기존에 제시되었던 개념을 응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기술적으로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에서 해당 글의 검색 및 제시를 하는데 더 용이하다는 것을 뜬한다. 책에는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기술적인 내용까지는 제시하지 않지만, 각각의 콘텐츠가 중복되지 않는 개별적인 주소는 검색엔진에서 일종의 식별자 내지 DB의 PRIMARY KEY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블로그이 출현과 검색엔진 회사로 대표되는 구글은 실과 바늘과 같은 존재다. 기존의 세상은 특정기업, 특정언론, 그리고 이 조직에 속하는 소위 검증(?)된 사람의 말로서 전해지는 지식들이 사회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면 앞으로는 불특정 다수가 쏟아내는 지식들을 다시 불특정 다수가 찾고 분류하고 재창조 해나감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여론과 흐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니 정말 이러한 웹의 변화가 눈에 띄게 보이는 거 같다. 사실 시작하는 나로서도 그냥 처음에는 웹상에 나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을 가지자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평균 100여명 이상이 나의 글을 보고 있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컨텐츠가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양질의 컨텐츠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구글(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라는 회사이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거 같다. 아무래도 전산을 전공했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 책이라서 그런지 더 생각을 많이하면서 읽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로 인해서 긴장감 있는 독서가 되지는 못했지만, 책의 내용이 촉매가 되어 본인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는 과정도 나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책의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며 흥미롭다는 것이다. 또한 책을 통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닮았다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Posted by 봉달이

2010/05/21 13:47 2010/05/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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